(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SK수펙스추구협의회, 핵심 구성원간 ‘역할 교체’로 ‘전문성’과 ‘종합 능력’ 동시에 높여
최태원 회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분야에 대한 전문성 못지 않게 종합하는 통찰력 강조
SK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가 새로운 인적 변화를 맞으면서 향후 그룹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이에 따라 기존 멤버 SK증권의 매각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새로 합류할 계열사의 향배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수펙스는 이번 인사 조정을 통해 그룹 내 ‘집단지성’을 동력 삼은 경영체제로서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 근거는 이번 인사의 특징이 ‘책임자의 전문성 강화’라는 점에 있다. SK는 지난 7일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7개 위원회 가운데 4개 위원장의 보직을 변경했다. 인물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역할의 교체를 통해 분야별 적임자들을 각 부문에 전진 배치했다.
물론 전문성 강화만이 핵심은 아니다. 이번 인사의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성원들의 교체보다는 상당 수준의 ‘보직 변경’이 실질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구성원들이 ‘전문성’ 못지 않게 ‘종합 능력’을 갖추게 하는 포석인 셈이다.
이는 전적으로 그룹 오너인 최태원 회장의 포석으로 보여진다. 최 회장은 2012년 당시 CEO 세미나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신설을 거론하면서 ‘전문성’과 ‘종합능력’을 함께 강조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와 회장이 단독으로 그룹 경영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원을 위해서는 그 분야에 가장 정통한 관계사가 자율 판단하고, 그룹과 전문가들이 종합해서 검토하는 경영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에 수펙스추구협의회의 핵심 구성원들은 상호 보직 변경을 통해 각각 다양한 전문성을 키움과 동시에 그룹 현안에 대한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ICT 책임, 반도체 이끈 박성욱 부회장이 글로벌 성장 모색 등 리더간 바톤 터치
재계 관계자, “삼성은 미전실 해체로 컨트롤타워 기능약화,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새로운 모델”
특히 4차 산업혁명 대비와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두고 보면 ICT(정보통신기술)위원장과 글로벌성장위원장의 보직 변경에 눈에 띈다. ICT위원장에는 본래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을 맡았던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임명됐다.박 사장은 SK텔레콤의 차세대 이동통신 인프라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미디어 등 ICT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적격이라는 인사평을 받는다.
반대로 ICT위원장이었던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글로벌성장위원장에 포진됐다. 박 사장은 이번 취임으로 향후 해외기업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협력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을 이끌었던 인물인 만큼 앞으로 SK가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협업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유정준 SK E&S 사장 역시 글로벌성장위원장에서 에너지·화학위원장으로 적절한 보직 변경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반도체와 함께 SK의 실적을 책임지는 ‘양날개’ 중 하나인 석유·화학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에너지·화학위원회를 떠나 커뮤니케이션위원장에 안착하며 사업적 부담을 덜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집단 지성’ 구축 움직임에 재계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8일 뉴스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삼성의 경우 사회적 비판여론으로 인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상황인데, SK그룹은 핵심 계열사 수장들만으로 구성된 집단 의사결정체제를 정교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벌 그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새로운 경영모델로 주목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룹 대표계열 16개사만 참여하는 수펙스, 최근 ‘공석’ 두고 계열사 간 자리다툼 치열
매출 면에서 SK브로드밴드 우세, ‘실적효자’ 반도체계열사 편입 가능성도 제기
이처럼 수펙스의 역할 강화가 점쳐지는 가운데, 아직까지 공석인 한 자리를 두고 어떤 계열사가 추가 편입될 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그룹 컨트롤타워이긴 하지만 참여하는 계열사는 16개로 한정돼 있다. 현재는 협의회에 포함돼 있던 SK증권이 매각으로 인해 제외되면서 한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당초 SK그룹은 임원인사와 함께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합류할 새로운 계열사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미뤄진 상태다.
특히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합류한다는 것은 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로서 위상이 높아짐을 의미하는 만큼 공석을 두고 자리다툼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새멤버로 거론되는 계열사는 SK브로드밴드,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이다. 매출 규모 면에서 보면 SK브로드밴드가 가장 유력하다. 올해 3분기까지 SK브로드밴드의 누적 매출은 2조2122억 원으로, 다른 후보 계열사들보다 훨씬 많다. 특히 수펙스의 운영비용이 16개 계열사의 매출 기준에 따라 분담된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최태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다면 SK실트론과 SK머티리얼즈가 합류할 가능성도 높다. 반도체용 웨이퍼 생산 기업인 SK실트론은 올 8월 LG그룹으로부터 SK그룹으로 편입된 이래 빠른 속도로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어 더욱 그렇다.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제조하는 SK머티리얼즈 역시 2015년 인수된 이후로 SK의 반도체 사업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