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임혁필의 재발견, 세바스찬에서 '샌드아티스트'로

백수원 입력 : 2011.12.09 17:07 ㅣ 수정 : 2017.04.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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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중학교 때부터 미술학도를 꿈꿨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처럼 청주대 서양화과에 합격.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군 제대 후 겪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학을 가기에는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하기에는 지방대라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학과에서 ‘웃긴다’는 얘기는 좀 들은 지라 우연히 본 개그맨 시험에 한 번에 척 붙는 ‘내 안의 끼’를 발견, 개그맨의 길로 들어섰다.

 

1997년 KBS 13기 공채 개그맨, ‘개그콘서트’에서 영국 귀족 순수혈통 ‘세바스찬 주니어 3세’로 나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혁필이 그다.

 

‘천박해 천박해 천박해’, ‘나가 있어’, ‘안드레~~~~’ 등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는 개그에만 안주하지 않고 현재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서양화가로서 개인전, 단체전에 참여하거나 또 얼마 전에는 대리운전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년 전부터 대학로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인 ‘펀타지쇼’ 연출자로서, 또한 공연에서 샌드 애니메이션을 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선보였다.

 

도화지에 꿈을 그려나가고 그 꿈이 채워지면 또다시 다른 꿈으로 채워가는 임혁필을 그의 꿈이 담긴 공연장에서 만났다.

 

임혁필이 연출 한다! 그리고 임혁필은 샌드아티스트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세바스찬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임혁필은 방송무대가 아닌 대학로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가 최초 연출을 맡은 넌버벌 퍼포먼스 형식의 공연 ‘펀타지쇼’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인 마술, 버블, 댄스, 마임 등을 통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전달하며 꾸준히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정통개그를 해 온 임혁필이 이렇게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된 의도는 무엇일까.

 

“10년 넘게 코미디를 했었고 ‘개그콘서트’ 연극무대도 많이 했었는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어요. 마술, 버블 쇼 등 여러 행사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을 한 무대에서 다 같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라고 공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어른들에게 유년의 향수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새록새록 일깨워 줄 수 있도록 다양한 퍼포먼스가 담긴 ‘펀타지쇼’가 더 궁금해졌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누구보다도 동심 세계를 잘 알 수 있는 이점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어렸을 때 다들 좋아했던 거예요. 어른이 돼가면서 ‘마술은 속임수야’ 그러든지 버블 옷에 묻으면 털어내기 바쁘고, 샌드애니메이션, 왜 예전에 ‘두껍아 두껍아’ 모래 가지고 놀았던 기억 있으시죠? 요즘에는 놀이터 모래 더럽다고 못 하게 하고. 어렸을 때 소중하게 그리고 재밌게 여기던 놀이가 나이 들면서 하찮게 여기는 것…. 그래서 동심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임혁필은 잃어버렸던 어른들의 동심도 깨우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럼 그의 아이들은 공연을 어떻게 볼까?

 

“우리 애들이 5세, 8세인데 공연을 5번 정도 봤는데 대개 좋아해요. 그림자 쇼 같은 경우 따라 하기도 해요. 나는 우리 부모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매일 일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내가 하는 일 같은 경우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좋을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혜택이 있지 않나 싶어요.(하하)”

 

임혁필이 이번 ‘펀타지쇼’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샌드 애니메이션을 관객 앞에서 펼쳐 보이는 것도 공연의 묘미 중 하나다.

 

샌드 애니메이션이 어렵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그리는 것을 오래 했기 때문에 영상 보면서 기본적으로 하기까지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다만, 재료 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닷가 모래는 아니에요. 모래 알갱이가 너무 두꺼워도 안 되고 너무 고와도 안 돼요. 모래도, 그리고 판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거쳤죠.”

 

그럼 가장 근원적인 질문 하나, 왜 샌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을까.

 

“무대에 있었던 사람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무대에서 그림을 접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게 딱 나에게 맞는 거였죠.”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현명한 자신의 표현이었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남녀의 일생을 얘기했어요. 둘이 만나고 아이를 낳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점점 나이 드는 그런 내용이에요.”

 

특히나 임혁필은 인생과 샌드 애니메이션이 매우 닮아있는 점을 흥미로워했다.

 

“샌드 애니메이션은 내가 그렸던 유화나 벽에 걸려놓은 그림과 달라요. 이것은 모래로 금세 그려지고 또 지워지고. 우리 인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게 아니듯이 이 장르가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인생에 대한 스토리를 작품으로 풀었죠.”

 

열정을 가지고 도전한 ‘펀타지쇼’는 1주년이 막 지났다. 첫 공연과 지금의 공연을 비교했을 때 많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일.

 

“다들 너무나 좋게 평가해주시고 ‘임혁필이 놀라운 모습도 있구나!’ 하시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처음에 공연을 올렸을 때는 스토리 없이 마술, 버블, 샌드 애니메이션만 딱딱 보여줬는데 지금은 지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임혁필이 개그맨에서 공연 연출자로 탈바꿈하면서 그 공연은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듭한다.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그의 노력이 오픈런으로 1여 년 동안 공연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쇼 공연이기 때문에 마술, 버블을 넘어 더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줄 거예요. 그래서 ‘국내에도 이런 것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알려주고 싶어요.” 포부를 밝히는 그의 눈빛이 진중하다.

 

임혁필은 개그맨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아티스트다!

“내가 해야지 그런 것보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임혁필이 서양화가에서 개그로 입문했을 때, 즉 진로를 바꿨을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뱉은 대답이었다.

 

순수 미술보다 취업을 선택해야 할 즈음, 우연한 기회에 개그맨 시험에 한 번에 붙어서 ‘개그 천재’인줄 알고 그림보다 방송에 전념했지만 배고픈 무명시절을 거쳐야 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엑스트라로 그리고 코미디 프로 중 사이드 코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후배들이 먼저 뜨는 것을 봐야 했고 5~6년 동안 힘든 무명의 시간을 거친 것.

 

그럼 임혁필이 처음 대학로 무대에 서게 된 건 언제일까.

 

“‘갈갈이 패밀리’ 박준형 이런 친구들과 함께 우리끼리 해보자고 해서 대학로 공연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됐어요. 그러니깐 98년부터 대학로 공연 처음 했는데 진짜 소극장에서 갈고 닦았다고 해야 하나. 관객이 없어도 의상 갖춰지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서 했어요. 무대에 서고 싶었으니깐요.”

 

‘무대’에 서는 그날을 꿈꾸며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신문 배달을 하며 열심히 살았을 그가 그려졌다.

 

그렇게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개그콘서트’에서 세바스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이름도 올리면서 소원은 이룬 듯했지만 임혁필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10년 4월 개인전 ‘조연(Supporting actor)’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더 세컨드(The Second)’ 전을 열었으며 2011년 1월에는 '츄팝스타 전'에 참가해 '마징가제트'를 비롯한 '대장로봇' 시리즈를 전시했다.

 

조연에 대한 콘셉트가 독특하게 와 닿았다. 임혁필의 주특기인 캐리커처와 ‘대장로봇’은 어떤 이유에서 그리는 것일까.

 

“주연들만 알아주는 드~러운 세상”이라고 농담을 던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주연만 기억하잖아요. 톱스타가 되려면 조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만들어주는 건데 사회적 이슈는 주인공밖에 없어요. 마징가제트도 그렇고. 땅딸보는 아무도 기억 못 하지요. 그래서 내 작품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서 첫 개인전을 ‘더 세컨드’라고 했죠”라며 첫 개인전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에서 착안한 ‘대장로봇’ 같은 경우도 ‘조연’과 같은 맥락이에요. 2인자들 사실 그런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마징가제트도 장동건도 다 뜨는 거죠. 앞으로 이렇게 주연을 빛내주는 스태프와 관련해서 그릴 거에요”라고 앞으로 그릴 그림에 대해 살짝 귀띔해줬다.

 

캐리커처 또한 임혁필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그는 개그맨들은 얼굴에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얼굴들은 그려서 남겨두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해골전시회’에서 자화상을 전시하기도 했던 그는 양악수술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때는 해골이 주제인데 내가 양악수술 했잖아요. 아직도 핀이 박혀있는데 그때 병원에 얘기해서 핀 박힌 엑스레이를(내 해골이죠) 그림 정 가운데 둬서 전시했죠.”

 

이렇게 개그와 작품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임혁필. 개그와 미술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창작이에요. 개그 코너 자체는 본인의 아이디어와 생각이 많이 들어가요. 그런 창작들을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림 또한 혼자 아이디어 내고 혼자 작업하면서 나중에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죠.”

 

이 땅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간다는 것

 

임혁필은 개그맨, 서양화가, 연출자, 대리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지만 많은 수식어 중 가장 불리고 싶은 수식어를 물었더니 단 0.01초의 망설임 없이 “개그맨이죠”라는 답변이 들려온다.

“개그맨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도 ‘개그맨 임혁필이 그림 그리네. 사업해도 ’개그맨 임혁필이 사업하네’ 등 개그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원초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개그맨 얘기에 유세윤의 아이디어를 존경한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개그맨은 목숨 걸고 ‘개그 콘서트’만 하려고 해서 획일화 돼 있어요. 만약 개그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정말 개그맨들은 실업자가 되는 거죠. 세윤이 같은 경우는 뭐가 없어져도 살아남아요. 개그맨들 프로그램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이 중요합니다.”

 

그럼 개그맨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개그맨들이 잘살아야 할 것 같아요. 웃기고 안 웃기고는 두 번째 문제인 거 같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만나서 제대로 된 코너 걸리면 알려지는 거죠. 그런데 개그맨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한없이 우스워져요. 영화배우랑 가수가 만약 대마초를 하면 ‘창작의 고통이다’, ‘예술 하니깐 허용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개그맨들은 그런 행동 하면 대개 우습게 보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거죠. 좋은 아이디어로 좋은 프로그램 만나면 알려질 수 있으니 더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임혁필은 인터뷰 내내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센스 있게 자신의 일과 인생을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 그런 솔직함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최근 불거진 국회의원이 최효종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럼 달인은 모든 전국 달인들에게 고소당해야 했고 세바스찬은 전국 귀족에게 고소당해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과 관련해 그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바른 생각이 있는 게 중요해요. 그렇다고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반 분들이 얘기하는 것보다는 대개 다르더라고요.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어떤 스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스타를 통해서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반영되는 게 많거든요. 예를 들면 예전에 봉사 활동할 때 김현중이 왔는데 ‘그 친구가 연탄배달 한다’ 그러니깐 팬들이 같이 따라와서 했어요.”

 

따라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영향력이 커서 행동도 잘해야 한다는 게 임혁필의 기조이다.

임혁필, 아직도 꿈을 그린다...그리고 새로운 꿈을 만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동분서주 일하고 있는 임혁필을 이제 개그 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다.

 

“요즘 가요나 드라마도 계층마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개그콘서트’는 좋아하는 층이 어리니깐 점점 나이 든 사람들은 빠져야 해요. 코미디도 중·장년층이 볼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라며 종합편성채널 채널A ‘개그무대’에 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최양략 남희석 심현섭 선배님들과 어제 첫 녹화를 했는데 재미있었고, 오랜만에 코미디 프로 하는 게 좋았어요.”

 

예전의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를 그리워 한 사람들이라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좋아할 프로그램이란다.

 

연예계 책 출판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미술 관련 책 출간 욕심은 없을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림에 관련된 책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내고 싶어요. 어른들이 봐야 할 책들이 많거든요. 어른을 위한 동화는 내가 구상하고 있는 거에요. 페이지가 두 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에는 ‘아빠는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라고 하세요.’ 다른 쪽에는 아빠가 주차 시비로 싸우고 있는 거죠. 책장을 넘기면 또 한 쪽에는 ‘아빠는 우리한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는데 옆쪽에는 아빠는 늦게 들어온다는 그런 내용이죠.”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그림이지만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단다. “미술 이론은 싫고 내가 직접 그리는 동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개그맨다운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그의 책이 빨리 보고 싶어진다.

 

개그도 그림도 대리사업도 극장사업도 너무 행복하지만, 그는 아빠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가고 싶은 게 목표란다. 이어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한다.

 

“아빠가 공연해서 문화적 혜택이 있지만, 반면 주말에 공연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주말에 아빠랑 함께 놀 때 못 놀아주니깐 정작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거죠. 이러니깐 좋은 아빠 같죠. 하하.”

 

공연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쉬고 싶다는 그였지만, 임혁필의 가장 큰 꿈은 1년간 오프런으로 공연된 ‘펀타지쇼’가 더 잘돼서 해외진출도 해보고 싶단다. 또 공연을 통해서 도움이 필요로 한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펼쳐 보인다.

 

마지막으로 37세에 자신의 꿈을 알았다는 그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살다 보니깐 살아진 것 같아요. 그냥 살아진 삶하고 내가 목표 정하고 꿈꾸는 삶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죠. ‘꿈꾸는 다락방’을 3년 전부터 읽고 꿈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게 됐어요. 거의 40대 정도에 꿈을 가지게 됐는데 중, 고등학생 때 꿈을 가지게 되면 한 20여년 간 되뇌다 보면 꿈이 실현되지 않을까요. 책을 좀 읽어보니 일기나 자기의 계획서대로 된 사람이 많아요. 예를 들면 축구선수 박지성도 일기를 통해 ‘내가 몇 살 때는 뭐 할 거고, 또 몇 살 때는 뭐 할 거고’ 등 계획대로 차곡차곡 꿈을 실현한 사람 중 한 사람이죠. 20대 대학생들이 좌절만 하지 말고 좀 더 진취적이고 좋은 생각들을 갖고 목표를 정해서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사진=컬쳐게이트, 개그맨 임혁필 블로그 (http://blog.naver.com/feel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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